비핵화 미루고 해협 개방부터? 미·이란, 트럼프 방중 전 절충 가능성

기싸움 속 타협 기류… 논의 공식화
임계점 다다른 고통… “미봉책이라도”
종전 낙관론에 유가 100달러 아래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6일 미 워싱턴 백악관 이스트룸에서 열린 군인 어머니의 날 기념행사를 주재하며 연설하고 있다. 워싱턴=로이터 연합뉴스

교착하던 미국과 이란 간 종전 협상에 진전 조짐이 보인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중국 방문을 앞두고서다. 트럼프 대통령은 전쟁을 승리로 마무리한 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만나고 싶어 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더는 보관할 곳도 마땅치 않은 원유를 미국이 가로막아 내다 팔지 못하는 이란 역시 마냥 종전 합의를 미룰 수만은 없다. 미국의 핵심 요구사항인 이란 비핵화 합의는 일단 미룬 뒤, 맞불 봉쇄로 꽉 막힌 호르무즈해협부터 조금씩 열어 서로 숨통을 틔워 주는 형식이 모색될 수 있을 것으로 점쳐진다.

교착 타개

6일(현지시간) 트럼프 대통령은 백악관 취재진에게 이란이 핵무기를 보유할 수 없다는 미국의 원칙을 재확인하며 이란도 이에 동의했다고 주장했다. “우리는 얻어야 할 것을 얻어야 한다”고도 했다. 이란과 “지난 24시간 동안 매우 좋은 대화를 나눴다”며 “합의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는 낙관론도 설파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앞서 미국 공영방송 PBS 인터뷰에서 이란이 고농축 우라늄 비축분을 미국으로 반출하고, 지하 핵 시설 가동을 중단한다는 내용이 합의안에 담길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란 측 말은 다르다. 이란 최고국가안보회의(SNSC) 연계 반관영 누르뉴스는 이날 소식통을 인용해 “이란과 미국 간에 어떤 합의도 형성된 바 없다”고 보도했다. 강경 성향의 이란 군부 이슬람혁명수비대(IRGC) 산하 반관영 타스님통신도 미국의 제안에 수용 불가능한 조항들이 포함돼 있다며 “(협상 타결 기미가 보인다는) 미국 언론의 선전은 최근 트럼프가 적대 행위에서 후퇴하는 것을 정당화하려는 시도”라고 비난했다.

기싸움 속에서 감지되는 것은 타협 기류다. 이날 미국 온라인 매체 액시오스는 종전 합의의 기본 원칙을 담은 1쪽 분량의 양해각서(MOU)를 미국이 이란에 보냈고, 답변을 기다리는 중이라고 보도했다. 당장 나온 이란 반응은 문건 항목이 미국 요구일 뿐이며 자국의 검토가 끝나지도 않았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논의 사실은 인정했다. 이란 내 강경 세력인 IRGC 해군사령부가 이날 성명에서 “침략자의 위협이 무력화되고 새 협약이 준비됨에 따라 호르무즈해협을 통한 안전하고 안정적인 통항이 보장될 것”이라는 전향적 메시지를 발신하기도 했다.

협상 압력

6일 이란 테헤란의 한 거리에서 여성들이 이란의 현 최고지도자인 아야톨라 모즈타바 하메네이의 모습이 담긴 대형 그림 앞을 지나가고 있다. 테헤란=AFP 연합뉴스

임계점에 거의 다다른 압력이 양측을 서두르게 만든 것으로 짐작된다. 트럼프 대통령 입장에서는 2월 말 대이란 군사 작전 개시 뒤 10주가 넘었는데도 전쟁을 끝내지 못했다는 사실 자체가 달갑지 않다. 전미자동차협회(AAA)에 따르면 미국 휘발유 평균 가격은 이날 기준 갤런(약 3.78L)당 4.54달러로 2022년 6월 이후 약 4년 만에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집권 공화당에 큰 부담일 수밖에 없다.

이란이 겪고 있는 고통은 더 심할 수 있다. 미국의 해상 봉쇄로 원유 수출이 차단되며 핵심 자금줄이 끊겼고, 원유 저장 여력도 급속히 소진되고 있다. 이란 상공회의소 에너지위원회 석유 전문가인 하미드 호세이니는 이날 미국 뉴욕타임스(NYT)에 “해상 봉쇄가 전쟁보다 훨씬 더 심각한 위협이다. 우리 석유·에너지 수출과 정유 시설 운명이 위기에 처해 있다”고 말했다. 이란 석유부 당국자는 육상 및 해상 원유 저장 공간이 남아 있는 것도 길어야 45일이라고 NYT에 털어놨다.

트럼프 대통령의 방중은 양국 모두에 조기 협상 타결 동기를 부여한다. 트럼프 대통령으로서는 시 주석에게 종전 관련 도움을 요청해야 하는 처지가 되는 게 유쾌할 리가 없다. PBS 인터뷰에서 그는 다음 주(14, 15일) 중국으로 떠나기 전 이란과의 협상이 타결될 것으로 보느냐는 질문에 “가능하다”고 답했다. 시 주석과 대이란 전쟁과 관련한 중국의 역할을 논의할지와 관련해서도 “이 사안이 끝난다면 솔직히 (이야기를) 꺼낼 것도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란에는 협상력을 극대화할 수 있는 시점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조바심이 양보로 연결될 수 있다. 중국이 개입하는 것도 지금이 자연스럽다. 국제 유가가 안정되고 각국 소비 여력이 회복돼야 수출 주도형 경제 모델을 갖고 있는 중국에 이로운 데다, 이란산 원유 수입의 ‘큰손’으로 중국의 대이란 영향력도 강하다고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분석했다. 실제 왕이 중국 외교부장(장관)은 이날 베이징에서 아바스 아라그치 이란 외무장관을 만나 휴전과 협상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일단 봉합

다만 양측 합의는 미봉책이 될 공산이 크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 정권 내 온건파가 협상 테이블로 돌아올 수 있도록 복잡한 사안들은 추후에 해결한다는 구상을 갖고 있다고 이날 미국 CNN방송이 소식통을 인용해 보도했다. 비핵화 문제같이 입장 차이가 큰 쟁점은 협상을 뒤로 돌릴 가능성도 없지 않다. 에스마일 바가이 이란 외무부 대변인은 이날 자국 반관영 이스나통신에 “이번 협상 핵심 의제는 종전이며 핵 문제는 이번 단계에서 다뤄지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은 여전히 압박을 병행 중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트루스소셜을 통해 이란이 동의하지 않으면 다시 폭격하겠다고 경고했다. 대이란 군사 작전을 주도하는 미군 중부사령부는 이날 미군의 해상 봉쇄를 뚫고 복귀하려던 이란 유조선에 발포해 해당 선박을 불능화했다고 엑스(X)에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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