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엔 미사일 안 준다, 푸틴에 당하든 말든… 트럼프의 몽니, 왜?

‘이란戰 굴욕’ 獨총리 핀잔 뒤
주둔군 감축·車관세 인상 발표
‘폭격 탕진’ 무기 여유 없는 美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일 미 플로리다주 웨스트팜비치의 팜비치 국제공항에서 마이애미행 전용기(에어포스원)에 탑승하기 전 기자들과 대화하고 있다. 웨스트팜비치=AP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독일에 몽니를 부리고 있다. 프리드리히 메르츠 독일 총리로부터 “무모하게 나섰다가 이란에 창피를 당하고 있다”는 핀잔을 듣더니 독일 주둔 미군 감축과 독일산 자동차 관세 인상 방침을 한꺼번에 발표했다. 아직 유럽이 만들지 못하는 러시아 견제용 미국산 장거리 미사일을 독일에 건네주겠다는 전임 조 바이든 대통령의 약속도 없던 일로 만들 기색이다. 이란을 폭격하느라 무기를 탕진하는 바람에 유럽까지 챙길 여유가 없어진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보복 정황

1일(현지시간) 독일이 언짢게 여길 미국의 두 가지 조치가 공개됐다. 하나는 주독 미군 감축 계획이다. 숀 파넬 미국 국방부 수석대변인은 본보에 보낸 성명에서 피트 헤그세스 국방부 장관이 독일 주둔 병력 가운데 약 5,000명을 12개월 내 철수시키라는 명령을 내렸다고 밝혔다. 또 하나는 유럽연합(EU)산 자동차 고관세 복원이다. 같은 날 트럼프 대통령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트루스소셜에 대미 EU산 승용차·트럭 관세를 다음 주부터 25%로 인상할 것이라고 적었다. 자동차는 독일의 대미 주력 수출품으로 현재 관세율은 15%다.

납득할 수 없는 명분은 아니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미군 감축안은 유럽 주둔군 규모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전인 2022년 수준으로 되돌리는 게 목표다. 유럽과 중동을 줄이고 서반구(남북 아메리카)와 인도·태평양을 늘린다는 것은 이미 공개된 미국의 병력 배치 구상이다. 보리스 피스토리우스 독일 국방장관은 2일 dpa통신에 “독일을 포함한 유럽에서 미군 병력 철수는 예상 가능한 일이었다”고 말했다.

자동차 관세 재인상도 마찬가지다. 트럼프 대통령은 EU가 “승용차·트럭을 미국 공장에서 생산하면 관세가 부과되지 않는다는 것은 합의된 일”이라고 했다. 미국은 대미 투자 가속화를 유도하기 위해 한국에도 비슷한 압박을 가한 적이 있다.

공교로운 것은 시기다. 하필 양국 정상 간 설전 직후였다. 메르츠 총리는 지난달 27일 미국이 이란에 “굴욕을 당하고 있다”며 “전략 없이 전쟁에 뛰어들었고 협상에서도 설득력 있는 전략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이에 트럼프 대통령은 “독일 총리는 이란 문제에 간섭하지 말고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종식과 망가진 자기 나라를 고치는 데 집중하라”(지난달 30일)고 반격했다. 이달 2일에는 ‘왜 주독 미군을 줄이려 하느냐’는 취재진 질문에 이유 설명 없이 “5,000명보다 훨씬 더 많이 줄일 것”이라고 답했다. 미국과 독일 당국자들은 트럼프 대통령의 분노를 달래려 미 국방부가 주독 미군 철수 발표 시기를 앞당겼을 가능성을 미 뉴욕타임스(NYT)에 시사했다.

주독 미군 감축 예고는 여야 막론한 미국 정치권의 반발을 초래했다. 연방 상원 군사위원회 민주당 간사인 잭 리드(로드아일랜드) 의원은 1일 성명을 내고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를 공격하고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동맹국들을 괴롭히는 시기에 미국의 유럽 내 군사적 영향력을 약화시키는 것은 (러시아 대통령) 블라디미르 푸틴에게 값을 매길 수 없는 선물”이라며 개탄했다. 집권 공화당 소속인 연방 상·하원 군사위원장 로저 위커(미시시피), 마이크 로저스(앨라배마) 의원도 2일 공동 성명을 통해 “유럽 주둔 미군 감축이 푸틴 대통령에게 잘못된 신호를 보낼 위험이 있다”고 우려했다.

안보 공백

프리드리히 메르츠 독일 총리가 지난달 30일 독일 뮌스터에 있는 연방군 기지를 방문해 장갑차 복서에 타 보고 있다. 뮌스터=로이터 연합뉴스

독일과 유럽에 결정적 위기를 부를 결정은 따로 있다는 경고도 나온다. 미국산 장거리 미사일 배치 무산이다. 미국 국방부 관계자는 바이든 대통령 재임 시절 약속한 장거리 미사일 부대의 독일 주둔을 트럼프 행정부가 취소할 것이라고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에 전했다. 양국은 2024년 7월 나토 정상회의에서 토마호크와 SM-6 등 미국산 장거리 미사일을 올해부터 독일에 배치하기로 합의했다.

장거리 미사일 부재는 유럽에 실질적인 안보 공백과 직결된다. 독일 싱크탱크 에디나의 소장인 크리스티안 묄링은 미국의 독일 내 장거리 미사일 부대 배치 계획 취소에 비하면 주독 미군 감축은 “덜 심각한 문제”라고 FT에 말했다. 아직 미국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장거리 미사일의 공급이 끊길 경우 유럽으로서는 대안이 없다는 것이다. 독일 내 미사일 배치 계획 철회가 미국에 불가피한 결정이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FT는 미국이 대이란 폭격에 소진된 자국 무기고의 비축량을 보충하느라 유럽에 제때 무기를 인도하지 못할 수 있다고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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