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저주가 美 패배 불렀다”… FIFA ‘레드카드 스캔들’ 일파만파
사실상 첫 월드컵 본선 징계 번복
美 상대 벨기에 포함 全 유럽 반발
美서도 탄식… “우승해도 꼬리표”

지난해 12월 5일 미국 워싱턴 케네디센터에서 열린 2026 북중미 월드컵 조 추첨 행사 도중 잔니 인판티노(오른쪽) 국제축구연맹(FIFA) 회장이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에게 FIFA 평화상을 수여하며 그와 악수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국제축구연맹(FIFA)의 북중미 월드컵 16강전 미국 팀 골잡이 출전정지 징계 번복에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입김이 작용했다는 의혹인 ‘레드카드 스캔들’의 파장이 일파만파다. 경기 상대인 벨기에는 물론 트럼프 대통령 재집권 뒤 줄곧 미국과 불화해 온 유럽 전체가 반발하고 나선 데다, 트럼프 대통령의 근거 없는 자국 심판 매도에 브라질도 불쾌감을 내비치고 있다. 미국에서마저 대통령이 자국 팀에 해로운 짓을 했다는 탄식이 나온다.
호날두도 수혜자?
6일(현지시간) 트럼프 대통령은 잔니 인판티노 FIFA 회장에게 전화를 걸어 재심을 요청한 사실이 있음은 인정하면서도 자신과 인판티노 회장이 징계 결정과 무관하다고 항변했다. 그는 백악관 취재진에 “위원회가 결정했고 그것은 옳았다. 반칙이 아니었고 최고의 선수들이 뛰는 경기가 누구나 보고 싶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무슨 문제가 있느냐는 태도였다. 인판티노 회장도 이날 성명에서 FIFA의 사법 기구는 독립적이라며 결정 개입설을 일축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도리어 레드카드를 꺼낸 심판에게 화살을 돌리기도 했다. “과거 기록을 확인해 보면 좀 의심스럽다”며 “아무도 믿지 못하는 판정을 내렸다”고 말했다. 핵심 공격수 폴라린 발로건이 출전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벨기에가 이긴다면 자신이 패했던 2020년 미국 대선처럼 조작된 것이라는 궤변도 늘어놨다.
그러나 우연은 처음이 아니다. 지난해 월드컵 예선에서 퇴장당하며 3경기 출전정지 징계를 받은 포르투갈 공격수 크리스티아누 호날두가 한 경기 만에 징계가 풀려 이번 본선 첫 경기부터 뛸 수 있게 된 과정에도 트럼프 대통령이 있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사우디아라비아 프로축구리그에서 뛰는 호날두가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가 이끄는 사우디 대표단 일원으로 백악관을 찾은 지 일주일 만에 해당 결정이 이뤄졌다”고 전했다. 작년 트럼프 대통령의 노벨평화상 수상이 불발되자 FIFA 평화상을 신설해 안겼을 정도로 트럼프 대통령을 챙기는 인판티노 회장의 정성은 각별하다.
관세·그린란드 이어

6일 열린 미국과 벨기에 간 국제축구연맹(FIFA) 2026 북중미 월드컵 16강전 경기에서 미국이 패하자 미 워싱턴 도심 대형 잔디 공원 내셔널몰 내 FIFA 응원 구역에 모인 축구 팬들이 실망한 기색을 보이고 있다. 워싱턴=UPI 연합뉴스
부글부글 끓는 곳은 유럽이다. 전직 축구 심판인 막심 프레보 벨기에 부총리 겸 외무장관은 이날 성명에서 “정말로 전화 한 통이 이 이해할 수 없는 결정을 이끌어 냈다면 축구와 스포츠의 가장 기본적인 규칙을 훼손한 것”이라고 말했다. 벨기에왕립축구협회(RBFA)는 “이번 경기 결과와 무관하게 몇 달이 걸려도 싸우겠다”고 선언했고, 유럽축구연맹(UEFA)도 FIFA가 “넘지 말아야 할 선(레드라인)을 넘었다”고 비판했다.
가뜩이나 유럽은 트럼프 대통령이 미운 터였다. 올해 초 서방 안보 동맹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회원국 덴마크의 자치령 그린란드를 점령하겠다고 위협하고 상의도 없이 일으킨 대(對)이란 전쟁을 돕지 않는다고 유럽을 비난하더니 지금도 대러시아 억지 전력인 유럽 주둔 미군을 감축하겠다고 협박 중이기 때문이다. 작년부터 내내 관세로 괴롭히고 있기도 하다.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트럼프가 축구로 유럽과 새 갈등을 일으켰다”고 평가했다.
트럼프가 유럽만 자극한 것은 아니다. 브라질 축구협회는 트럼프 대통령이 자국 출신 심판의 미국 선수 퇴장 판정을 비난한 것과 관련해 성명을 내고 “하파엘 클라우스 심판의 경력에는 그를 불신하거나 의심할 만한 근거가 전혀 없다”며 해당 심판을 모욕하지 말라고 요구했다. 클라우스 심판은 447경기를 소화한 베테랑인 데다 2024년 ‘남미의 월드컵’이라 불리는 코파 아메리카 결승전의 주심을 맡기도 했다.
심지어 미국 내에서도 트럼프 대통령을 보는 시선이 곱지 않다. 이날 경기 시작 전 정치평론가 사이러스 얀선은 “미국 대표팀은 벨기에를 이기면 대통령의 부정행위 덕을 본 게 되고, 진다면 대통령이 부정행위를 했는데도 이기지 못한 꼴이 된다”며 승패와 상관없이 손해를 볼 수밖에 없는 처지라고 꼬집었다. 평론가 브라이언 크래슨스타인도 “이제 미국이 월드컵 우승을 해도 의심이 제기될 것”이라며 “트럼프에게 감사한다”고 비꼬았다. 결국 벨기에와 맞붙은 이날 16강전에서 미국이 1대 4로 패하자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는 “트럼프가 경기 결과를 뒤집으려 FIFA에 다시 전화하고 있다”는 비아냥과 “트럼프의 저주가 패배를 불렀다”는 식의 조롱이 줄을 이었다.
- 워싱턴=권경성 특파원ficcione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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