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37년 ‘철권통치’ 막 내렸다… 하메네이는 누구
‘호메이니 오른팔’ 이슬람 혁명 이끌어
강경 보수 등 업고 최고지도자로
반미·강경 보수 세력 구심점

이란 국영 방송은 아야톨라 세예드 알리 하메네이 최고지도자가 지난달 28일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란 공습으로 사망했다고 1일 밝혔다. 하메네이는 그의 딸, 사위, 손녀 등과 함께 사망한 것으로 확인됐으며 이에 따라 이란 정부는 40일간 전국적 추도 기간과 일주일간 공휴일을 선포했다. 사진은 하메네이가 2004년 11월 5일 테헤란에서 열린 금요 기도회에서 설교하는 모습. 테헤란=AP 뉴시스
이란의 절대 권력자이자 이슬람 혁명의 마지막 상징과도 같았던 아야톨라 세예드 알리 하메네이 최고지도자가 86세로 사망했다. 이란 국영통신사 IRNA는 1일(현지시간) 하메네이가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가한 공습으로 사망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하메네이는 지난 30여 년간 이란 신정체제를 이끌며 ‘반미·반이스라엘’ 전선의 구심점 역할을 했다.
하메네이는 이슬람 혁명을 이끈 루홀라 호메이니의 뒤를 이은 이란의 두 번째 최고지도자다. 이란의 이슬람 혁명 세력은 1979년 친서방 팔레비 왕조를 축출하고 신정 정권을 수립했다. 최상위 이슬람 성직자인 최고지도자는 입법·사법·행정 전반에 걸쳐 절대 권력을 행사할 수 있다. 군 통수권과 전쟁 선포권은 물론, 대통령 인준과 해임권까지 행사한다.
호메이니 제자로 수차례 투옥도

아야톨라 세예드 알리 하메네이 이란 최고지도자 연보. 그래픽=강준구 기자
하메네이는 1939년 이란 북동부 시아파 성지 도시 마슈하드에서 태어나 이슬람 신학을 공부하던 중 호메이니를 만났다. 호메이니의 제자로서 반(反)팔레비 왕조 운동을 이끌며 수차례 투옥됐던 그는, 이슬람 혁명 직후엔 혁명평의회, 테헤란 금요예배 지도자, 혁명수비대 사령관, 국방부 차관 등 요직을 거치며 ‘호메이니의 오른팔’로 부상했다. 이후 1981년과 1985년 두 차례 대통령에 선출되기도 했다.
1989년 호메이니의 사망으로 하메네이는 두 번째 최고지도자가 됐다. 당시 최고지도자가 되기엔 종교적 권위가 부족했지만, 유력 후계자의 실각과 강경 보수 집단의 지지를 받아 헌법 개정을 통해 자리에 올랐다. 이후 군·정보·사법·국영언론을 장악하고, 모든 영역에서 충성파 네트워크를 구축해 37년간 체제를 공고히 했다. 카림 사자드푸르 카네기 국제평화재단 연구원은 BBC에 “하메네이의 세력 기반은 강경 성직자들과 신흥 부유층, 그리고 혁명수비대의 긴밀한 카르텔”이라고 평가했다.
겉으로는 온화한 학자풍 이미지를 내세웠지만, 권위주의를 내세워 반대파를 탄압하고 장기 집권을 꾀했다. 하메네이는 2009년 부정선거 규탄시위, 2019년 유류 보조금 인상 시위, 2022년 히잡 시위 등의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있을 때마다 강경 진압을 승인했다. 유달승 한국외대 이란어과 교수는 “하메네이는 호메이니와 달리 강경세력에 의존하고, 체제를 폐쇄적으로 운영했기 때문에 내부에 불만이 많았던 것이 사실”이라고 평가했다.

1일 이란 테헤란에서 아야톨라 세예드 알리 하메네이 최고지도자의 사망 소식을 접한 정부 지지자들이 하메네이를 애도하고 있다. 테헤란=AP 뉴시스
중동 내 시아파 반미 구심점
하메네이는 중동 내 시아파의 ‘반미 전선’ 구심점 역할을 하면서 미국의 ‘요주의 인물’로도 부상했다. 하메네이 체제에서 이란은 레바논의 헤즈볼라, 이라크·시리아의 친이란 민병대, 예멘 후티반군, 가자지구 하마스 등을 지원하는 군사·재정 네트워크를 구축해 이스라엘과 미국, 걸프 산유국들을 상대로 대리전을 벌여왔다는 평가를 받았다.
2001년 9·11 테러가 발생하자 미국과 관계 개선을 시도하는 이란 대통령의 움직임을 막지 않았다. ‘파트와(종교령)’를 통해 대량살상무기(WMD)와 핵무기 개발을 금지하기도 했다. 그러나 2015년 버락 오바마 미국 행정부와 맺은 핵 합의(JCPOA)가 도널드 트럼프 1기 행정부 때 파기되자, 우라늄 농축과 고성능 원심분리기술을 ‘국가 과학 및 독립의 상징’이라고 평가하기 시작했다.
하메네이는 올해 초 테헤란 상인들의 항의로 시작된 대규모 반정부 시위를 혁명수비대와 민병대를 동원해 유혈진압했다. 이란 당국은 3,117명이 사망했다고 발표했지만, 국제 인권단체는 최대 3만6,500명이 숨졌을 것으로 추산했다. 이는 하메네이 내부 지지 기반을 약화시키는 한편, 트럼프 대통령이 군사압박을 가하며 핵 협상을 종용하는 계기가 됐다. 미국과 이란의 3차 핵 회담이 열린 지 이틀 만에 하메네이는 미국과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사망했다.

지난달 28일 캐나다 온타리오주 리치먼드힐에서 이란 정권 교체 지지 행진에 참가한 한 여성이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란 공습으로 이란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세예드 알리 하메네이가 사망했다는 설이 보도되자 울먹이며 환호하고 있다. 리치먼드힐=AP 뉴시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