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질식시키려다… 트럼프, 고유가 속수무책
기대 못 미치는 해상 봉쇄 효과
천정부지 기름값에 여당도 동요
“조바심 탓에 눈앞서 승리 놓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일 미 플로리다주 웨스트팜비치의 팜비치 국제공항에서 전용기(에어포스원)에 탑승하기 전 기자들과 대화하고 있다. 웨스트팜비치=AFP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꺼내 든 대(對)이란 해상 봉쇄 카드의 효과가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모습이다. 오히려 속수무책으로 기름값만 끝없이 치솟고 있다. 이란을 질식시키기 전에 본인이 먼저 나가떨어지게 생겼다.
미국보다 오래
미국의 해상 봉쇄로 원유 수출길이 막힌 이란의 원유 저장고는 수용 한계에 다가가고 있다. 블룸버그통신은 2일(현지시간) 이란 고위 관리를 인용, 이란이 원유 저장고가 가득 찰 때까지 기다리지 않고 선제적인 원유 감산에 착수했다고 보도했다.
해상 봉쇄로 트럼프 행정부가 노리는 것은 두 가지다. 일단 핵심 수익원인 원유 수출의 차단을 통한 이란 정권 자금 압박이다. 다른 하나는 원유 저장고 포화다. 원유를 수출하지 못해 원유 저장고가 꽉 차게 되면 산유량을 감축할 수밖에 없다. 그렇게 되면 유정이 영구 손상을 입을 수 있다는 게 미국 계산이었다. 실제 유정은 한번 감산하면 산유량을 회복하기 어렵고 아예 불능화되기도 한다.
원유 저장고가 가득 차 유정을 강제로 폐쇄해야 하는 상태가 ‘탱크 톱’이다. 아직 이란이 이 단계에 도달하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 1주 전에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의 석유 기반시설(인프라)이 사흘 내로 마비된다고 했지만 실현되지 않았다. 글로벌 투자은행 JP모건은 한계까지 한 달가량이 남았다고 본다.
변수는 이란의 적응력이다. 이란의 경우 과거 제재로 유정 가동이 중단되는 일이 잦았고, 그 덕에 유정에 영구적 손상을 주지 않고 신속히 재개하는 노하우를 익혔다고 이란 관리들이 블룸버그에 말했다. 블룸버그는 “이란에 관건은 고유가로 고통을 당하는 미국보다 더 오래 버티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기다렸더라면
실제 트럼프 대통령도 곤경에 몰리고 있는 것은 마찬가지다. 미국 내 기름값은 천정부지다. 1일 기준으로 미국 전국 평균 휘발유 가격은 갤런당 4.39달러까지 상승했다. 미국·이란 전쟁 직전에는 2.89달러에 불과했다. 세계 원유 수송 병목인 호르무즈해협 봉쇄 상태가 지속되는 한 유가가 추가 상승하리라는 게 전문가들 전망이다.
유가 상승은 물가 상승으로 이어지고 이는 전쟁에 대한 부정적 여론을 부추기기 십상이다. 11월 중간선거가 6개월 앞으로 다가왔다. 1일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트럼프 행정부를 향해 명확한 전쟁 출구 전략을 제시하라고 요구하는 목소리가 집권 공화당 내에서도 커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2일 미국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휘발유 가격을 안정시키기 위해 백악관이 연방정부가 활용할 수 있는 정책 수단을 검토하고 있지만 전략 비축유 방출, 존스법(미국 선박에 미 항구 간 운송 독점권 부여) 유예, 러시아산 원유 관련 제재 일시 중단 등 지금껏 동원된 조치들은 효과가 제한적이다. 연방 유류세 폐지나 미국산 원유 수출 금지 등 남은 선택지 역시 경제적·정치적 부담이 크다는 평가가 나온다.
가장 확실한 유가 억제 방법은 호르무즈해협 개방을 보장하도록 이란과 합의하는 것이지만, 협상은 여전히 교착 중이다. 미국 싱크탱크 퀸시연구소의 트리타 파르시 부소장은 2일 뉴스레터 구독 플랫폼 서브스택에 올린 글에서 “애초 봉쇄 없는 휴전 상태를 유지했다면 이란이 통행료를 징수하려 유조선의 해협 통항을 허용했을 가능성이 크고 이로 인해 유가가 떨어졌다면 트럼프 대통령 입지가 강해졌을 것”이라며 “트럼프가 조바심 탓에 눈앞에서 승리를 놓쳤다”고 말했다.
- 워싱턴=권경성 특파원ficciones@hankookilbo.com
- 손효숙 기자sh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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