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의 새 무기 된 ‘호르무즈해협’… 뒷전으로 밀린 핵 협상
美에 싸움 걸어 의제 변경 성공
선거 전 전쟁 회피 노린 배수진
정상화 시비 속 종전 합의 요원

지난달 17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입을 호르무즈해협으로 꿰매 막는 상상이 형상화된 이란 테헤란의 반미 광고판 앞을 차량들이 지나다니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이란이 미국과의 주요 협상 의제를 비핵화에서 호르무즈해협으로 전환시켰다. 해협 봉쇄가 자국의 새 무기임을 미국이 깨닫게 만들면서다. 올 11월 미국 중간선거를 앞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게 해협 정상화를 통한 유가 안정이 급선무라는 점을 노린 것이다. 이에 따라 정작 미국의 개전 목표였던 이란 비핵화 및 종전 합의를 위한 협상은 더욱 지연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공방 중단했지만…미-이란, 30일 실무회담 놓고 진실공방
트럼프 대통령은 29일(현지시간)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트루스소셜에 “이란이 회담을 요청해왔다”며 30일 카타르 수도 도하에서 실무회담이 열릴 것이라고 밝혔다. 앞서 미국 온라인 매체 액시오스는 소식통을 인용해 미국과 이란이 상호 공격을 중단하기로 합의하고, 도하에서 만나 호르무즈해협을 둘러싼 분쟁의 해결을 시도할 계획이라고 보도했다.
그러나 미국과의 실무 협상에 임하고 있는 카젬 가리바바디 이란 외무차관은 이날 “예정돼 있는 (미국과의) 기술회의가 없다”며 부인했다고 현지 매체들은 전했다. 대신 가리바바디 차관은 이날 오만에서 호르무즈해협 관리를 위한 첫 공동위원회 회의를 가졌다고 밝혔다. 미국과 이란 모두 종전 양해각서(MOU) 체결 이후에도 핵 협상이 아닌 해협을 핵심 의제로 보고 있는 것이다.
앞서 17일 두 나라 대통령은 전투를 멈추고 이란의 호르무즈해협 재개방과 미국의 대(對)이란 해상 봉쇄 해제를 맞바꾼 뒤, 60일간 이란의 핵무장 포기에 미국이 대이란 제재 해제로 보상하는 방식을 협상한다는 내용의 종전 MOU에 서명했다.
하지만 이후 26, 27일 양국은 서로 상대국이 휴전 합의를 위반했다며 군사 시설을 공격했다. “이란의 존재가 사라지게 만들겠다”(트럼프 대통령)거나 “미군 기지가 지옥을 경험하게 해 주겠다”(이란 이슬람혁명수비대)는 험악한 말로 설전을 벌이기도 했다.
고의 도발
교전의 발단은 25일 호르무즈해협 통항 상선을 겨냥한 이란의 무인기(드론) 공격이었다. 미군이 이에 대한 대응으로 공격 원점인 해협 인근 이란 군사 시설들을 공습하자, 이란이 미국의 걸프(페르시아만) 동맹국 내 미군 군사기지를 겨냥해 반격하며 싸움이 커진 것이다.
선박 공격은 호르무즈해협을 확실히 장악하기 위한 이란의 고의적 도발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이란과 더불어 호르무즈해협 연안국인 오만이 유엔 국제해사기구(IMO)와 상의해 이란 영해를 우회하는 대체 항로를 개설하고 그 길로 해협 통항 선박들을 유도하자, 해협 통제권 확보 및 통행료 징수 구상에 위기감을 느낀 이란이 서둘러 제동을 걸고 나섰다는 것이다.

아바스 아라그치 이란 외무장관이 28일 이라크 바그다드 외무부에서 푸아드 후세인 이라크 외무장관과 회담한 뒤 공동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바그다드=AP 연합뉴스
협상 좌초 위험을 각오하며 이란은 배수진을 쳤다. 전 세계 에너지 수송의 병목인 호르무즈해협을 통제할 수 있는 능력은 이제 이란에 포기할 수 없는 카드가 됐기 때문이다. 전쟁에서는 억지력으로, 협상에서는 지렛대로 각각 요긴하다. 스위스 제네바대학원 소속 이란 분석가인 파르잔 사베트는 “해협 통제권을 공고히 하려면 트럼프 대통령이 중간선거를 의식해 전쟁 재개에 신중할 시기인 지금이 적기라는 판단을 이란 정권 수뇌부가 했을 수 있다”고 미국 뉴욕타임스(NYT)에 말했다.
가짜 목표
실제 이란은 단호하다. 아바스 아라그치 이란 외무장관은 이날 이라크 수도 바그다드 방문 중 연 기자회견에서 이란의 호르무즈해협 통항로 통제를 우회하려는 어떤 시도도 해협 재개방을 지연시키고 긴장 수위를 높일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란과의 협의를 거치지 않은 오만의 일방적 항로 개설은, 이란에 해협 통제권을 부여하고 이란과 오만이 대화해 미래 해협 관리 및 해상 서비스 조건을 결정하도록 규정한 MOU 5조의 위반이라는 게 이란 측 해석이다.
미국도 순순히 응할 리는 없다. 마이크 왈츠 유엔 주재 미국대사는 이날 미 폭스뉴스 인터뷰에서 “우리는 필요하다면 국제 수로를 불법 통제하려는 그들의 기반시설(인프라)을 계속 무력화할 것”이라고 예고했다. 그러나 미국의 거듭된 폭격에도 이란의 선박 공격은 차단되지 않고 있다고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이 꼬집었다.
더 큰 문제는 호르무즈해협 정상화에 정작 미국의 최우선 목표였던 이란 핵 협상은 후순위로 밀리게 됐다는 것이다. NYT는 “협상단이 임시 합의에 대한 위협의 해결에 집중할수록 전쟁을 완전히 끝내고 핵 합의를 이끌어내기 위해 쓸 시간은 줄어든다”며 “60일인 협상 기간이 몇 개월 연장되리라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 예상”이라고 짚었다.
- 워싱턴=권경성 특파원ficciones@hankookilbo.com
- 문재연 기자munja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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